핫플레이스도 좋지만, ‘롱’ 플레이스가 되었으면 하는 남해군

세상에서 젤 로맨틱한 보건소가 있는 곳 #남해.#독일마을 과 #미국마을 과 #남해스떼 가 있는 작은 지구, 남해.멋진 수제맥주와 막걸리가 공존하는 곳, 남해. 이렇게 알알이 스토리 가득한 곳일 줄은 미처 몰랐어요..! 세밑이 가까워져도 특별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해돋이의 찬란함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인파에 이미 지치기 마련이다. 매년 12월 31일은 소박하게 보낸다. 목욕재계하고 저녁 즈음 집 근처 한강으로 나선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앉아 노을의 기를 받아, 내년 버킷리스트를 메모장에 정리한다. 이 정도가 한 해를 정리하는 나만의 루틴이었다.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아는 동생에게서 신박한 연말 모임 제안을 받았다. 매년 남해 다랭이 마을에서 새해 해돋이를 보는데, 올해는 그 멤버에 나도 합류하라는 의견이었다. 모두 그 친구의 지인이었지만, 나의 적응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게 호출한 이유였다.  남해에서 일출을 가장 가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에서 한 해의 포문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적어도 2년마다 새해에 남해를 찾았다. 내게 새해 첫 공연은 남해 해돋이인 셈이다.  새해 해돋이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소치 펜션>은 그 조건에 가장 부합한 숙소였다. 남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가장 가깝고 찬란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서 연초까지 ‘2년간’ 이 숙소에서 보내려면, 치열한 경쟁률을 이겨내야 한다. 최소 한 달 전부터 예약 전쟁이 시작된다.  펜션이라 하기에는 조금 연식이 있어 민박처럼 보였다. 숙소를 끼고돌면 남해바다 최고의 스크린이 펼쳐진다. 잘 정돈된 정원부터 감탄사가 나왔다. 가방은 대충 숙소 안에 던져 놓고 몸은 반대쪽으로 돌아섰다. 나무 데크로 만든 야외 테라스에 제멋대로 몸을 얹었다. 남해바다가 틀어놓은 다큐멘터리에 눈을 떼지 못해 다음 일정을 잊어버렸다. 비탈진 경사에 조성된 계단식 논은 여느 해안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조형미를 자아냈다. 다랭이 마을에서 구경하는 해돋이가 장관인 이유다.  한겨울인데도 논에 푸른빛이 돌았다. 마늘 종자를 심어서 온통 매운 향이 진동했다. 혹자는 다랭이 마을을 이탈리아 남부 도시와 연결시킨다. 특히, 코로나 시대였던 지난 몇 년 동안 다랭이마을은 유럽을 대신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전경에 술이 빠질 수 없어서 방금 사 온 다랭이 마을 막걸리를 꺼내 남해 바다 배경에 끼워 넣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를 VIP 좌석에서 바라보니 넓은 시야에 가둘 수 있는 바다가 한이 없도다.  남해 서면에 도착했다. 하늘이 칠흑 같아서 주변을 살펴볼 겨를이 없어 숙소 입구를 찾았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다. 중앙 등을 켰다. 불현듯 바깥에 미련이 남아 베란다로 나왔다. 답답한 마천루 하나 없는 탁 트인 전망이었다. 곳곳에 켜져 있는 가로등으로 중형 크기의 공원임을 확인하였다. 전망에 좀 더 집중하려고 방안의 조도를 없앴다.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호텔 앞은 구획별 야외 경기장들이 기어코 자취를 드러냈다.  다음 날 오전, 전체 모습이 궁금해 커튼을 젖혔다. 공원 사이사이로 어두운 밤 내밀하게 숨겨뒀던 야외 운동 코트와 필드가 드러났다. 공원 안에는 농구 코트가, 11시 방향에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잔디가 깔린 야구장이 저 멀리 바다 아래 배경에 깔렸다. 지금 묵고 있는 <남해스포츠파크호텔>은 이름 그대로 각종 스포츠 전지훈련장으로 유명하다. 실내외 경기장과 트레이닝 센터가 있었다.  1층 로비에는 스포츠 스타들의 사진이나 사인볼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역 프로 팀의 전지훈련지로도 자주 애용되는 곳이다. 선수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산책 및 오전 운동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숙소였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일상의 루틴을 누려봤다. 터놓은 길대로 걸었다. 북향의 서상 마을과 가까워지니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서상 항구가 나올 때 즈음 지도 앱을 꺼냈다. 마을 진입 전에 동선을 구상했다. 남해대교의 축소판인 붉은 아치형 다리를 건너자 한 주택이 고즈넉한 공간을 독차지했다. 홀로 유럽 내음을 발하고 있는 큰 저택의 정체는 <서면보건지소>. 내가 본 가장 로맨틱한 보건소였다. 몇 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관심을 표명한 짧은 의식이다.  계속해서 소하천을 따라 내어놓은 산책로가 이어졌다. 바다 곁 작은 숲 속인 <서상 숲>과의 조우가 이뤄졌다. 한동안 내리받았던 햇살을 잠시 거둘 시간이 되었다. 한 옥타브 정도의 선율로도 편안해지는 치유를 서상 숲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조금 더 걸음을 더하면 마을의 움직임이 보일 듯했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로 갈아타 본격적인 마을 산책이 시작되었다.  일상을 밖에서 영위하는 주민분들 외에 외지인은 보이지 않았다. 서상 삼거리에서 가고 싶은 장소가 좌측에 몰려 있었다. 서면 우체국 앞에서 멈췄다. 생각지도 않은 노다지를 발견했다. <서상 양조장>은 누가 봐도 마을의 시작부터 지탱했을 법한 외관이었다. 문이 열려있어서 대뜸 입장했다. 익숙한 양조도구와 시설이 반가워 흥분했다.  그런데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더 이상 외치면 민폐일 것 같아 조용히 둘러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양조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포항제철 엘리트였던 아들이자 남편분(이정언)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업을 물려받게 되었다. 현재까지 55년간 이정언, 곽명선 사장님 부부가 이 양조장을 운영하시는데, 최근 항암치료 중이라 몇 달째 술을 빚지 못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쉽고 착잡했다. 열린 문을 닫고 나왔다.  이 작은 동네에 정말로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동네 책방이 나타났다. 책방 <스테이 위드 북>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새로운 순풍 같았다. 책과 함께 잠시 머물다 가시라는 주인장의 마음이 책방 작명과 잘 맞아떨어졌다. 김밥을 파는 특이한 책방이었는데, 지금은 사정상 판매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음료와 맥주는 여전히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향해 터놓은 길 끄트머리 즈음에 오로지 물회만 판매하는 <부산횟집>이 나왔다. 물회 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남해의 맛집이다. 대부분이 산지를 이뤄 산간 곡저에 흐르는 하천을 따라 형성한 작은 마을인 서상 마을. 품은 이야기만큼은 그리 작지 않아 더 듣고 싶었다. 남해스포츠파크호텔 북쪽이 서상 마을이라면, 남쪽은 장항 마을이었다. 서상 마을은 바다를 숨기고 있는데 반해, 장항마을 쪽은 시원하게 바다부터 보였다. 장항마을 진입로가 공사 중이라 다소 어수선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모래 노변을 지나 무성하게 자란 갈대밭에 몸을 숨겼다. 고개만 내밀었을 때 바라는 건 사진 한 장이었는데, 지인들은 짙은 청색 빛에 물든 장항 해변에 마음을 돌렸다.  장항 해변은 남북으로 뻗은 몽돌해변이다. 높은 공기 해상도는 맞은편 여수반도까지 가감 없이 보여줬다. 그믐달 모양으로 수놓은 장항 해변 위로 눈 화장하듯 장항 숲이 덮여 있다. 소나무 방풍림이 울창해 낮에는 해를 피할 수 있는 쉼을 제공하고, 밤에는 고요한 바다를 감상하는데 훌륭한 소품이 되어줬다. 호젓한 바다와 울창한 수풀림이 있으니 인파가 몰릴 수밖에. 장항 숲 거리는 초입부터 서로 다른 업종의 상점들이 마을의 울창함을 돕고 있다.  <더 풀>은 뉴욕 스타일 버거를 판매하는데, 가게 뒤쪽에 페인트가 벗겨진 풀장이 실제 존재한다. 산 아래 논과 밭 그리고 바다와 숲 사이로 자리 잡은 풀장의 모양새가 신비하게 잘 어울렸다. <더 풀>과 노란 건물을 나눠 쓰는 <남해스떼>는 남해와 인도식 인사말인 ‘나마스떼’를 언어유희적으로 작명한 가게다. 인도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남해로 귀촌 한 부부의 인도 소품 숍이다.  뉴욕과 인도 다음은 남해였다. <바다항 식당>은 장항 출신의 자매가 운영하는 토속적인 남해 대표 식당이다. 이색적 모드가 시골마을에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식당이었다. 약 50m 떨어진 곳에는 식사와 쇼핑을 마치고 화룡점정 할 수 있는 카페 <헐스밴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록 밴드와 전혀 관련 없는 이 카페는 화덕에서 구워주는 피자(특히, 페퍼로니 피자)와 페루산 원두로 내린 커피가 소문난 메뉴다. 카페 외벽에 콘크리트 벽보다 통유리가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할 정도로 바다 뷰와 논밭 뷰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페였다. 오전에 농사일을 마치면 보통 새참을 기다렸지만, 이 마을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남해는 대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섬마을이었다. 남해 읍내가 속한 큰 섬인 남해도는 노량대교와 남해대교가 하동군과 이어졌고, 창선도는 삼천포대교와 연결되었다. 이렇게 큰 두 개의 섬이 남해군의 대부분 말해준다.  남해 시골마을을 돌아보면, 얼핏 제주도와 일맥상통함 점을 발견한다. 돌로 쌓여 있는 건축물 혹은 담벼락, 유난히 화강암 큰 돌을 활용한 지형물을 자주 볼 수 있다.  시멘트와 같은 건축용, 토목용 결합 경화제를 조달 받기 어려운 시절, 남해군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활용한 구조물을 짓기 시작했다. 바다에서는 석방렴 같은 자연친화적인 어법을 애용했다. 돌담을 주로 반달형으로 쌓아 밀물 때 돌담 안으로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돌담 밑부분에 밀어 넣었던 통발로 건져 올리는 방식으로 잡았다.  물자 운반이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에 마을에서는 곡식을 저장하는 목적으로 돌창고를 만들었다. 여전히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돌창고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재생을 선보이고 있다.  남해 읍내에서 지족으로 가는 방면에 고인돌 마냥 뜬금없이 돌창고가 나타났다. 돌로 쌓은 사각 이글루 같았다. 시문 마을에 있는 돌창고가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1호 작품이다. 남해의 젊은 인력들의 일자리 창출과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이 돌창고가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지속적인 경제활동 차원에서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가 시그니처 메뉴인 카페가 운영되었고, 나머지 공간은 전시 및 작업실로 문화적 잠재력을 키우고 있었다. 서상 마을에서도 돌창고 2호점이 최근 오픈했다. 남해에는 이런 돌창고가 15개나 더 존재했다. 돌창고는 남해를 말해주는 역사의 일부다. 프로젝트 연대성을 확장하고 남해에 특수성을 전국에 알리는데 널리 활용될 것이다.  … 핫플레이스도 좋지만, ‘롱’ 플레이스가 되었으면 하는 남해군 계속 읽기